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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자칼럼
작성자: 강서기   ID: 2492
작성일: 8/27/2023   조회수:155
     
원망 속에서도 순종한 나오미
     

원한은 잘 표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원한은 기쁨을 잃은 마음이나 험담으로 새어 나온다.

룻기의 나오미는 원한이 있었을까? 몇 가지 단서로 봐 그럴 위험성이 농후하다. 그녀는 정체를 숨긴 채 성문에 말없이 들어갔고, 반갑게 맞이하는 여인들에게 딱딱거렸으며, 자신을 ‘마라’(괴롭다)라 부르라 했고, 룻의 존재를 무시했다. 끝으로 그녀의 애통은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아니라 그분에 대한 비난이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건만, 그녀의 신학은 ‘은혜 없는 주권’뿐이었다. 우리의 애통이 원한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히브리어 학자 트렘퍼 롱맨은 이렇게 말한다.

시편에 보면 하나님께 건강하게 삿대질하는 예가 많이 나온다. 물론 건강하지 못한 삿대질도 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대표적인 예다. 건강한 경우는 말 상대가 인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차이가 있다. 하나님을 원망하더라도 그분 자신께 기도하면 희망이 있다. 그렇다면 나오미는 시편 기자 쪽인가, 아니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 쪽인가?

나오미는 순종했다. 옳은 길을 택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갔다. 비록 감정은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녀는 한 발짝씩 귀환의 걸음을 옮겼다. 나오미는 순전히 의지적 행위로 계속 삶 앞ㅔ에 마주 섰다. 나오미는 고난과 실망 속에서도 순종했다. 그 순종이 믿음의 정수다.

-폴 밀러, “사랑하다, 살아가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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